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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에 대하여 경건함을
연정 기자 / 입력 : 2013년 02월 05일(화) 10:46
공유 : 트위터페이스북미투데이요즘에

언제나 섣달 그믐과 설날 그 무렵이 되면, 그 날 만큼은 우리네들은 선영들을 추모하는 미풍양속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요즈음은 우리의 전통을 이탈하여 그렇지 않은 족속도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그러한 족속들은 그 이유가 친구들과 만나 놀거나 해외여행을 가기 위해, 민속의 전통인 설날에 받들어야 할 조상에 대한 차례를 양력설로 미루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행복과 육체적 쾌락을 구분 못하고 사람의 도리와 일신의 편리함을 구분 못하고 있는 것이 그들이며, 대개는 자기 앞의 물욕을 위해서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이 또한 그들의 모습이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양력 1월 1일에는 새해의 희망을 이야기하며 늘 희망찬 새해의 바람을 말해 오는 것에 퍽 익숙해졌다. 그러니 민속에서조차 시간의 흐름도 국가회계연도 개시일에 맞추지 않았나하는 마음마저 든다. 참 딱한 노릇이다. 그러나 며칠 후면 섣달 그믐이 오고 설날이 온다. 이에 즈음하여 사람이 산다는 것과 죽는다는 것, 그리고 죽은 자에 대한 경건함을 가져야 한다는 것은 한 번 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나 생각된다.

사람은 자기 몸은 자기의 것이라고 하지만, ‘자기’라고 하는 그 사람은 사실 천지라는 자연에서 부모를 통하여 온 것이며, ‘자기’라는 특정인이 일생 동안 관리하다가 ‘죽음’을 계기로 다시 천지라는 자연으로 넘겨주는 것이 우리 인간이며, 그 인간이 산자와 죽은 자라는 두 얼굴을 갖고 있는 것 아닐까?

사람이 ‘산다는 것’ 그건 무엇일가? 그것은 바로 지금의 이 모습 아닌가? 이 모습의 나는 천지라는 자연에서 부모를 통해서 온 것이며, 나를 길러준 것 역시 부모 아닌가? 그 부모도 나와 같이 그들의 부모를 가지고 있는 것이며, 이것이 연속성을 이루어 하나의 가계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산다는 것, 그 자체에서 보면 선한 인간이든 악한 인간이든 구별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사람은 인류의 역사를 통하여 삶의 궤적을 형성해 오면서 가치 지향화를 추구해왔다. 그러기에 유가(儒家)에서는 인간의 품위를 인정하고 자기 수양을 강조해 왔지 않는가?

사람은 살아있는 동안 가치 지향화를 계속해 온 ‘이승’에서 어느 날 죽음을 계기로 천명(天命)을 다하고 ‘저승’이라는 하나의 새로운 세상으로 이동한다. 그러기에 죽음은 장엄한 것이 아닌가? 사람이란 이승에서 저승으로 이동하는 그 과정을 벗어날 수가 없다. 죽음! 그것은 천명을 따른다지만, 손바닥 한번 뒤집는 것으로 시공(時空) 속에서 다만 자기의 위치를 변동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유구한 영겁으로 보면 1만년도 찰나에 불과한데, 그의 백분의 일인 백년도 못되는 세월 속에서 ‘생(生)’과 ‘사(死)’라는 숨바꼭질을 하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다만 우리는 현재 있는 시공의 위치를 바꿀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우리는 생사일여(生死一如)의 관계 속에서 살아있던, 죽어가던 영원한 시공 속에서 같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저 명칭이 산 사람, 죽은 사람일 뿐이다. 그러기에 살아 있는 나와 죽어 간 사람과는 항상 영원한 시공 속에 같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죽어간 사람 즉 이승을 떠나신 부모, 조부모, 증조부모, 고조부모, 이러한 분들은 어떻게 대해야 할까? 우리는 ‘추모‘라는 형식을 통해 정례적으로 제사, 추석, 설의 차례를 통해 우리의 선영들과 만나고 있다. 말하자면 이승의 사람과 저승의 사람과 공식적인 만남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추모’라는 의식 즉 제사, 추석, 설 의 차례에서 만나게 된다. 우리의 선영은 나를 형성해준 배경이며, 나 또한 후대들을 형성하는 배경이 되어 선영과 후대의 관계를 형성시키는 위치에 있다.

그러기에 추모를 통해서 만남은 진심으로, 경건한 마음으로 대해야 한다. 공자는 「논어」 ‘위정’ 편에서 “부모가 살아 계실 때 섬기기를 예(禮)로써 하고, 돌아가시면 장례를 예로 하고, 제사도 예로써 지내야 한다”고 했다. 결국 사람이 살아 있을 때나, 죽을 때나, 제사지낼 때 태도는 예로써 일관하라는 말이다. 그건 죽은 자와 나와의 관계는 생사에 관계없이 관계 내에 있기 때문이며, 부모는 내가 있게 되는 배경이기 때문이다. 결국 사람은 이승에 있는 자나 저승에 있는 자나 동일하게 예로 대하라는 말이다. 다만 부모가 이승에 있을 때는 ‘효제’로 대하고, 죽어갈 때도 살아계실 때처럼 부모를 받들어 모셔야 한다. 특히나 제사를 지낼 때는 마치 조상신이 내 앞에 있는 듯이 대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점은 공자가 「논어」 ‘팔일’편에서 일러 주고 있다. 그것은 바로 제사지낼 때는 정중하고 경건히 하라는 뜻일 것이다. 그런데 오늘의 상황은 형식에만 치우치고 있으니 인간의 마음이 그만큼 진실성이 없어지고 가난해 졌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사회에서의 산자와 죽은 자와의 관계 논리도 우리가 앞에서 논급했던 문제와 정신은 마찬가지일 것 이다. 특히나 형식적인 면에서 보면 그들 말대로 지도층에 있다고 하는 사람들이 죽은 자를 대하는 모습에서도 소인배적 근성을 그대로 나타내고 있다.

요즈음 그러한 부류의 소인배적인 공직의 지도자들은, 도덕적인 면에서도 사회적 비난을 받았던 자기의 처신에 반성은커녕, 도당(패거리)을 조성하며 명예의 뜻도 모르는 명예에만 심취되어 있는 경우를 우리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왜 그들은 “꽃은 십일을 붉게 피어 있지 않고(花不開十日紅), 권불십년(權不十年)”이라는 것을 모르는지 모르겠다. 그들은 죽은 자가 생시에 자기를 비판했다거나 자기의 행위에 비협조적이었다 해서, 죽은 자를 몰아붙이거나 비하하기 마련이니 말이다.

참다운 지도자라면 정치나 행정활동 이전에 항상 교양과 수신에 진력해야 하며, 패거리의 조성보다는 화합과 통합에 진력하는 ‘화이부동(和而不同)의 정신을 구현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죽은 자에 대한 경건한 마음을 갖는 것이 정치나 행정활동 이전에 참으로 사람다운 모습 아닐까? 언젠가는 우리 산자들도 죽음을 계기로 죽은 자들이 활동하는 그 곳으로 이동한다. 그 때 우리들은 먼저 이동한 죽은 자를 무슨 낯으로 대하게 될까?
연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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