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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전탑이 지나가는 마을마다 분노와 불안이 뒤엉킨다. 8월21일 전북특별자치도의회 의원총회의실, ‘초고압 송전선로 대책 특별위원회’가 독일 사례를 꺼내 들며 ‘전력길을 다시 그리자’고 외쳤다. 이날 행사장은 학계·환경단체·주민이 한목소리로 “수용성 없는 전력망은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을 숫자와 경험으로 증명해 내며, 공공성과 투명성을 요구하는 깐깐한 공론장의 얼굴을 분명히 드러냈다. 일방적 송전망 건설에 따른 재산권 침해와 환경 훼손 문제를 짚으며, 지중화와 분산형 전력망 도입 등 현실적 대안도 제시됐다.
“에너지전환, 송전망도 바뀌어야”
특위와 전북환경운동연합·송전탑건설 백지화 전북대책위원회는 에너지의 날을 하루 앞두고 ‘독일 에너지전환과 송전망 정책이 주는 시사점과 과제’를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발제자들은 태양광·풍력 비중이 45퍼센트에 이른 독일이 대형 송전선 대신 지중화와 분산망으로 갈등을 최소화한 정책 설계를 소개하며 “전북도도 ‘전력 대동맥’만 외칠 것이 아니라 생활권 중심의 ‘모세혈관’ 관점을 채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좌장은 임성진 에너지전환포럼 공동대표가 맡았고, 주제발표는 △염광희 독일 아고라에너르기벤데 선임연구위원이 ‘독일 에너지전환과 송전망 정책의 교훈과 시사점’을, △석광훈 에너지전환포럼 전문위원이 ‘이재명 정부의 에너지전환을 위한 전력망 분리와 배전 독립’을 발표했다. 이어진 지정토론에는 김혜정 지속가능발전연구센터 공동대표, 이재혁 한국환경연구원 연구위원, 이현석 진안군송전탑반대 대책위원회 집행위원, 이정현 전북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가 참여했다.
독일 사례로 본 송전망 정책의 전환
토론회 발표자들은 공통적으로 기존의 대규모 송전망 중심 정책이 재생에너지 분산화 기조와 충돌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특히 독일 사례에서는 지중화와 분산형 전력망이 지역의 환경과 주민권을 보호하면서도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을 이룰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았다. 독일의 송전망 지중화 정책과 주민 참여 보장 방식은 국내 정책 수립 과정에서 참고할 수 있는 구체적 모델로 평가됐다.
석광훈 전문위원은 이재명 정부의 에너지전환 정책이 전력망 구조 개편과 배전 독립을 수반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현재 전력망은 송전 위주의 중앙집중형 시스템으로 구성돼 있어 지역 에너지 자립이나 주민 참여가 구조적으로 배제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전력계통의 분권화와 함께, 지역 분산형 재생에너지 생산을 가능한 체계로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역 현실, 주민 목소리가 핵심
이번 토론회에는 진안, 완주, 순창, 무주 등 송전선로 건설 갈등 지역 주민들이 참석해 현장의 목소리를 전달했다. 주민들은 송전선로 사업이 일방적으로 추진되며 재산권 침해, 환경 파괴, 건강 우려 등 복합적인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고 호소했다. 특히 도의회 차원의 대응과 정부 차원의 제도 전환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이정현 전북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는 “송전망 건설은 더 이상 기술적 문제나 에너지 수요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익을 공유하고 피해를 예방하는 구조로 정책을 바꾸지 않으면 갈등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토론에 참석한 시민사회와 연구자들 또한 “전북은 국가에너지정책 수용지로만 머무르지 말고, 주민참여형 에너지 정책의 선도모델을 만들어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도의회 “수용성·균형발전 두 축으로 대응”
염영선 도의원(정읍2) 겸 특위 위원장은 “이재명 정부가 추진하는 재생에너지 확대 기조에 발맞춰, 송전망 계획도 전면 재검토가 필요하다”며 “일방적 추진 방식으로는 주민 수용성을 확보할 수 없고, 갈등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이어 “도의회는 지역 균형발전과 지속가능한 에너지전환을 위해 적극적인 정책 대응에 나설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북도의회 초고압 송전선로 대책 특별위원회는 이번 토론회에서 제기된 문제의식과 독일 사례, 지역 주민의 생생한 의견을 종합해 실질적인 대안 마련에 착수할 예정이다. 특히 송전망 지중화, 분산형 전력망 구축, 주민 수용성 보장을 위한 제도 개선 등이 논의의 핵심 축으로 부상하고 있다.
초고압 송전망, 갈등의 실핏줄이 된 전력 인프라
초고압 송전선은 전력길이자 갈등의 실핏줄이다. 이번 토론회는 독일 사례와 주민 경험을 한데 놓고 ‘전력 공급자 중심 패러다임’을 넘어 지역과 사람이 우선인 송전망 해법을 제시했다. 도의회 특위가 밝힌 지중화·분산형 전력망 정책이 실질적 제도 변화를 이끌어낼 때, 전북은 재생에너지 확대와 갈등 완화를 동시에 잡는 최초의 지방정부 모델을 만들 수 있다. 이 여정은 더 많은 주민 참여, 투명한 정보 공개, 그리고 중앙정부 의사결정 구조를 흔드는 집요한 정책 설계가 동반될 때 완성된다.
에너지전환은 기술적 과제인 동시에 정치적·사회적 선택의 문제다. 특히 초고압 송전망은 지역주민의 삶터를 관통하며 재산권과 건강권, 생태 환경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만큼, 일방적 추진 방식은 더 이상 용납되기 어렵다. 이번 토론회는 전북 자치정부가 에너지정책 수용자에서 주체로 전환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었으며, 정책 주도권을 되찾기 위한 주민·의회·전문가 연대의 흐름을 분명히 드러낸 전환점이었다. 독일 사례에서 보여준 바와 같이, 지역의 목소리가 반영된 구조적 전환 없이는 지속가능한 에너지전환도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이번 논의는 ‘기술의 문제’가 아닌 ‘민주주의의 문제’로서 송전망 정책을 재규정한 중요한 흐름이었다. 전북이 주도하는 ‘새로운 전력망의 상상’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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