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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창립 40주년을 맞은 고창농악보존회가 ‘사람과 굿, 삶의 판’을 지켜온 여정을 통해 무형유산의 지속가능한 모델을 보여주고 있다. 고창농악은 지역에 뿌리를 두고 전국으로 전파되며, 전통예술의 공동체성·동시대성·대중성을 동시에 획득해 나가고 있다. 교육과 공연, 축제와 연구를 아우르는 전수체계는 고창군을 대표하는 문화기반으로 자리잡았고, 최근 개관한 숙소동 ‘고운채’는 농악전수 생태계에 물리적 안정까지 더했다. 인류무형유산 농악·전북특별자치도 무형유산 고창농악이 지역을 넘어 전국, 나아가 세계로 확장되는 동력은 어디서 비롯됐고 어디로 향하고 있을까.
호남우도 영무장 가락, 고창에서 꽃피다
고창농악은 전라북도 고창군을 중심으로 한 호남우도 영무장(영광·무장·장성·함평) 지역 농악에 뿌리를 두고 있다. 지역 출신의 예인들이 중심이 되어 전승해온 고창농악은 “윗녘 가락은 빠르고 아랫녘 가락은 느린데, 고창농악은 그 중간에 있어 간이 잘 맞는다”는 말처럼 중간지대의 유연성과 균형감을 품고 있다. 대표적인 예인으로는 상쇠 박성근, 설장구 김만식, 수법고에 이모질 선생이 있었다.
고창농악은 1998년 상쇠 정창환 선생이 전북 무형유산 ‘고깔소고춤’ 예능보유자로, 1999년에는 황규언 선생이 상쇠로 지정되면서 전국적인 명성을 떨치기 시작했다. 2000년에는 고창농악보존회가 ‘전북특별자치도 무형유산 고창농악’ 보유단체로 지정됐고, 2005년에는 정기환 선생이 설장구 예능보유자로 추가 지정되며 고창농악의 위상이 확고히 자리잡았다.
전승 체계의 설계자, 상쇠 이명훈
현재 고창농악 전승 체계를 실질적으로 구축한 인물은 이명훈 상쇠다. 1968년 고수면에서 태어난 이명훈은 1985년 ‘고창농악대’라는 이름으로 부흥의 단초를 놓은 원로 스승 황규언·정창환·정기환에게서 가락을 전승받았다. 그는 고창농악 원로 예인들의 수제자로서 30년 이상 고창농악의 절차와 가락을 기록·연구·복원하며, 전승기반을 제도화하는 데 핵심적 역할을 했다.
문굿, 풍장굿, 도둑잽이굿 등 지역 고유의 굿을 복원하고, 교육·공연·축제·연구를 통합한 전승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1993년 단 14명으로 시작된 전수교육은 현재 연간 수천 명이 참여하는 규모로 확대됐으며, 전국 각지에서 고창을 거쳐 간 농악 인재들이 새로운 전통계승의 주체로 성장하고 있다.
전수관을 중심으로 한 교육·공연·축제
[교육―“사시사철 굿피는 고창”] 고창농악전수관은 고창군 성송면에 위치한 전통예술의 거점이다. 전수관에서는 ‘사시사철 굿피는 고창’, ‘전통예술학교’, ‘인문학 콘서트’, ‘꿈피는 문화뜰’ 등 20여 개 교육 과정이 돌고 돈다. 해마다 3천5백여 명이 북·징·장구·꽹과리를 배우고 합설판굿을 체험한다. 교육 신청은 접수 시작 몇 분 만에 마감될 정도로 열기가 뜨겁다.
[공연―전통과 현대를 한 무대에] 보존회는 연간 60여 회 무대에 서며 굿의 원형과 창의적 변주를 병행한다. 문굿·풍장굿·판굿·도둑잽이굿을 한데 묶은 <풍무>, 판굿의 흐름을 현대적 동선으로 재구성한 <판굿 1.3>, 연희극 <감성농악 시리즈>, 현장감을 살린 <고창농악 상설굿판>이 대표 레퍼토리다.
[축제―공동체가 주인공이 되는 판] 여름 끝자락 고창농악전수관 마당에 울리는 꽃대림축제는 농악, 영화와 전시, 연구와 공연이 어우러지는 전통연희 축제다. 동호인들이 모이는 고창굿한마당은 배우고 익힌 가락을 함께 풀어내는 교류의 장으로 자리잡았다. 14개 읍면 단위의 ‘고창농악한마당축제’는 농악을 공동체의 일상에 연결하는 실천적 문화 플랫폼으로 기능한다.
굿스테이에서 샤이닝까지…확장되는 콘텐츠
고창농악은 단순히 전통 계승에 머무르지 않고 새로운 문화 콘텐츠와 결합해 외연을 넓히고 있다. 교육 신청이 오픈과 동시에 마감될 정도로 인기가 높은 전승 프로그램은 ‘굿스테이’라는 명칭으로 주말 체류형 농악 체험을 제공하며, 전통문화와 지역관광을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2023년부터는 농악과 미디어아트를 결합한 창작공연 <샤이닝>이 고창군 상설공연으로 무대에 올랐고, 2024년에는 서울 무대까지 진출해 새로운 형태의 관객 소통 가능성을 열었다.
전승기반 확장, 숙소동 ‘고운채’ 개관
2025년 7월 개관한 전수관 내 숙소동 ‘고운채’는 농악 전수 기반을 물리적으로 확장했다. 연면적 507제곱미터, 지상 2층 규모로 조성된 고운채는 총사업비 27억원이 투입돼, 식당과 숙소, 세탁실 등을 갖추고 있다. 최대 1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식당과 6인실 숙소 12실은 전수 프로그램 참여자들의 장기 체류 여건을 대폭 개선했다. ‘고운채’는 ‘고창다운 집’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 고창을 찾는 방문객이 지역민처럼 머물며 농악을 배우고 생활하도록 설계됐다.
고창농악의 파급력―고창에서 전국으로, 세계로
고창농악은 전북특별자치도 무형문화유산이자 인류무형유산 농악의 한 지류로, 이미 그 위상을 국내외에 각인시켰다. 하지만 고창농악보존회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지역 기반의 교육과 공연은 전국 농악공동체와의 연계를 확대하고 있으며, 창작 콘텐츠와 미디어 접목을 통해 글로벌 무대 진출의 가능성을 실험하고 있다. ‘농악’이라는 단어에 담긴 사람·삶·공동체의 의미는 현대사회에서도 충분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으며, 이는 고창농악이 문화유산을 넘어 살아있는 공동체 예술로 확장되고 있다는 증거다.
40주년 넘어 100년, 지속을 위한 과제
고창농악은 40년의 시간 동안 전통의 끈을 놓지 않고 지역을 문화적 토대 위에 올려놓은 집단적 노력의 결과물이다. 전통 계승, 교육 확대, 창작 공연, 연구 복원, 인프라 구축 다섯 축이 톱니처럼 맞물려 왔다. 교육과 공연, 축제와 전승이 하나의 유기적 구조를 이루는 고창농악은, 무형유산을 미래세대와 나누기 위한 살아 있는 시스템으로 기능하고 있다.
고창농악보존회 40년사에서 확인되는 사실은 하나다. 고창농악은 문화유산의 전통을 넘어 현재 진행형인 문화이며, 고창은 그 맥박을 가장 생생하게 뛰게 하는 도시다. 심덕섭 고창군수는 “오늘날 고창농악이 지역을 넘어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무형유산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군민 모두가 함께 신명나는 판을 만들어온 덕분”이라며, “앞으로도 고창농악이 세계 무대에서 더욱 빛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예인의 헌신, 주민의 참여, 행정의 지원이 삼박자를 이룬 이 생태계는 전국 어디에서도 쉽게 발견하기 어려운 구조다. 문화는 기억의 반복이자 실천의 지속이다. 고창농악의 오늘은 문화공동체가 어떻게 전통을 지켜내는가를 보여주는 명확한 사례이며, 동시에 그것이 어떻게 미래로 향하는지를 증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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