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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등산(方等山) 이야기
<향토서사시>(34)
이기화(고창지역학연구소장) 기자 / 입력 : 2012년 06월 04일(월)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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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장산의 본래 이름은 백제때의 방등산이었다. 방정평등(方正平等)하다는 불가의 바탕정신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고려시대에도 이 뜻을 새겨 극락에 이르는 반동강난 경지라서 반등(半登)산이라 하여 호남제일의 인맥을 배출한 신령한 산으로 추앙되고 있다.
임진란 이후 한족(漢族)의 명나라를 쳐서 중국천하를 통일한 만주족 누루하치가 청나라를 세움에 조선의 선비들이 들고 일어나 숭명배청(崇明背淸)운동을 전개 모화(慕華)사상의 상징으로 명나라의 삼신(三神)산을 풍성한 삶의 터전인 호남땅 삼신산으로 점지한 것이다.
방등산은 서향으로 중국대륙을 겨냥한 대응산이어서 일방장(一方丈)이라 하여 이때 방등이 방장(方丈)산으로 개명된 것이다.
백두대간의 호남정맥이 내장산 소 죽엄재에서 서쪽으로 틀어 그 줄기가 영광 불갑산과 해남 달마산으로 뻗친 능선 중 가장 우뚝하게 솟아난 영험한 산이 방등산(742m)이 아닌가.
여기서는 막힘없는 사위가 시원하게 펼쳐져 서해를 조망하고 중국대륙을 가까이서 응시하는 산이다. 이곳에 우뚝 멈춰선 땅 기운이 서북간으로 용트림하다 불끈 솟은 맥이 봉래산(蓬萊山-辺山)이고 그 여맥이 동북간으로 솟아난 끝자락이 영주산(瀛洲山-古阜 斗升山)이어서 일방장, 이봉래, 삼영주의 삼신산으로 정립되고 있다.
방등산을 삼국유사와 고려사악지(樂志)에 방등산가(方等山歌)로 그리고 「증보문헌비고」에는 반등산곡(半登山曲)으로 기록된 뚜렷한 역사의 사적이 있는 이 마당에 우리의 절실한 몫은 당초의 이름 방등산을 되찾을 때가 아닌가 하여 이렇게 외장쳐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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