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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지역 주민들과 시민사회가 한국전력이 추진하는 초고압 송전선로 건설사업에 집단적으로 반기를 들었다. 정읍, 고창, 부안, 완주, 무주, 진안, 장수, 임실 등 8개 시군 주민들과 환경단체는 5월7일 전북도청 앞에서 ‘송전탑 건설 백지화 전북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를 공식 출범시키고, 345킬로볼트(kV) 초고압 송전선로 전북 경유계획 전면 백지화를 촉구했다.
대책위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이번 사업은 주민의 동의도, 설명도 없이 강행되고 있으며, 수도권 산업단지를 위한 전력을 지방이 희생해 전달하는 구조”라며 “전북의 산과 들, 마을과 공동체가 627킬로미터 길이의 송전선로로 훼손될 위기에 처했다”고 밝혔다.
한국전력은 제10차 장기 송변전설비계획을 통해 2036년까지 서해안과 호남지역 재생에너지(전북 서남권 2.4기가와트, 전남 신안 8.2기가와트)를 수도권으로 송전하는 초고압 송전망 구축사업을 추진 중이다. 전주시를 제외한 전북 도내 13개 시군이 경유지로 포함됐으며, 총 21개 노선, 627킬로미터 구간에 송전선로와 대형 변전소, 개폐소, 공동접속시설 설치가 계획돼 있다.
하지만 사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주민과 지자체는 철저히 배제됐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대책위에 따르면, 주민설명회는 갑작스럽게 열렸고 ‘최적 경과대역’이라는 지도 한 장만 공개됐을 뿐, 사전 검토나 토론 절차는 전무했다. 입지선정위원회 운영도 문제로 지적됐다. 위원회에 공무원이 주민으로 둔갑해 참여했고, 지방의원이 규정에 없는 방식으로 포함됐으며, 구성요건인 주민대표 3분의 2 이상도 충족되지 않았다는 것이 대책위 측 주장이다.
국민권익위원회는 2023년 12월 “공무원은 주민대표가 될 수 없다”고 판단했으며, 입지선정위원회에 규정에 없는 지방의원이 포함된 것은 ‘선출직 배제’ 원칙에도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대전지방법원은 신정읍~신계룡 송전선로와 관련한 입지선정위원회 효력정지 가처분 소송에서 피해 주민 손을 들어준 바 있다.
이날 출범식에서 대책위는 “한전은 절차적 정당성도 확보하지 못한 채, 법과 원칙을 무시하고 송전탑 건설을 강행하고 있다”며 “경관 훼손, 전자파 우려, 지가 하락 등 지역 주민의 피해는 외면한 채 수도권 중심 전력정책만을 앞세우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한전은 송전탑 건설을 백지화하고, 전기를 사용하는 기업이 지역에 내려오는 구조 개편부터 논의하라”고 요구했다.
이들은 송전선로의 대안으로는 △지중화 사업 확대 △고속도로·철도 활용 경로 구성 △서해 해저 초고압직류송전(HVDC) 방식 등을 제시했다. 전력망 구축과 비용 효율성, 환경 보호를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정책적 제안도 내놓았다. 지역 내 전기 사용을 전제로 하는 기업·공장 유치, 지역별 전기요금제 도입, 정부조직법 개정을 통한 전력망 규제 독립기구 신설 등이다. 송전선로 문제를 단순한 갈등이나 인프라 갈등으로 보지 않고, 에너지 거버넌스 재편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김정기 전북도의원(부안)은 이날 연대발언에서 “전북은 전기를 만들어 수도권에 보내는 에너지 식민지가 아니다”라며 “지금 필요한 것은 송전선로가 아니라, 지역에서 전기를 쓰고 남는 에너지를 연결하는 RE100(알이백, 재생에너지 100% 사용 캠페인) 기업과 지역 산업 생태계”라고 말했다.
대책위는 이날 기자회견 이후 더불어민주당, 진보당, 민주노총 전북본부 등에 정책 제안서를 전달했으며, 전북도의회 세미나실에서는 ‘에너지전환과 지역사회의 과제’를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해 대응 논의에 나섰다.
전북지역의 송전선로 반대는 단순한 민원이나 환경 갈등을 넘어, 지역 전력 주권에 대한 구조적 문제 제기이자 수도권 중심 전력정책에 대한 정면 비판으로 확장되고 있다.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정부와 한전이 이 저항에 대응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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