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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이 한반도를 휩쓸던 1592년, 고창 흥덕의 선비와 백성들은 짐승의 피를 나누며 죽음으로 나라를 지키겠다고 결의했다. 국난 앞에서 목숨을 내건 그 선택의 현장이 430여년의 시간을 넘어 다시 역사 앞에 섰다. 고창군은 임진왜란 당시 의병들이 삽혈동맹을 맺고 구국 활동을 펼쳤던 ‘고창 남당회맹지(高敞 南塘會盟址)’가 12월18일 전북특별자치도 문화유산위원회 심의를 통과해, 12월26일부터 30일간 전북특별자치도 기념물로 지정 예고됐다고 밝혔다.
‘고창 남당회맹지’는 1592년(조선 선조 25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의병장 채홍국 등 흥덕 일대의 선비와 양민 약 300명이 구국의 기치로 의병을 창의하면서, 무덤 형태의 단을 쌓은 뒤 백마의 피를 나눠 마시며 조선을 위해 목숨을 바칠 것을 맹세(삽혈동맹)한 곳이다. 국난을 맞아 나라를 위해 의병을 일으키는 창의의 현장이었으며, 결속을 다지기 위해 피를 나누는 삽혈동맹이 실제로 이뤄졌던 상징적 공간이다. 문헌과 전승을 통해 당시의 상황과 의미가 비교적 구체적으로 전해지고 있다.
삽혈동맹으로 결성된 흥덕 남당의병 부대는 이후 실질적인 전투와 방어전에 참여했다. 이들은 진주성 전투에 가담했고, 순천 석보창과 남원 일대 방어 활동에도 나섰다. 정유재란 시기에는 흥덕 장등원과 부안 우반동 일대에서 끝까지 왜적에 맞서 싸운 것으로 전해진다. 남당의병의 행적은 호남 의병이 단순한 지역 저항을 넘어, 조직적이고 지속적인 항전 세력이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된다.
이 유적지는 오랫동안 맹단(盟壇), 술무덤(酒堆·주퇴), 또는 말무덤 등으로 불리며 지역에 전승돼 왔다. 고창군은 2004년부터 이곳을 향토문화유산 ‘남당회맹단’으로 지정해 관리해 왔으며, 이번 전북기념물 지정 예고를 통해 관리·보존의 위상이 한 단계 격상될 전망이다. 즉, 전북기념물로 지정되면서, 고창 남당회맹지는 임진왜란기 전북 지역 의병 활동을 입체적으로 드러내는 핵심 유적으로서 위상이 한층 분명해졌다.
심덕섭 군수는 “고창 남당회맹지는 임진왜란 당시 국난 극복을 위해 의병을 일으켜 굳은 맹세를 했던 ‘의로운 고창’을 상징하는 장소임이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것”이라며 “앞으로 당시 창의의 의미와 의병 활동을 체계적으로 정리해 전북 의병사와 임진왜란사의 역사적 의의를 재조명하는 선양사업을 추진하고, 보존과 활용 방안 마련에도 힘쓰겠다”고 밝혔다. 전북기념물 지정은 고창 남당회맹지가 ‘의향 고창’의 정체성을 역사적 사실로 증명하는 현장임을 다시 또렷하게 각인시키는 계기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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