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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초, 운명처럼 쇠채를 잡았던 한 청년이 있었다. 그로부터 35년. 뙤약볕 아래서나 차가운 겨울바람 속에서나 그가 지켰던 굿판은 이제 전북을 대표하는 무형유산의 상징이 됐다. 고창농악보존회 이명훈 고문(1968년생)이 전북특별자치도 무형유산 ‘고창농악 상쇠’ 보유자로 인정받으며, 그간의 헌신에 대한 최고의 예우를 받게 됐다.
■고창농악 40년사의 산증인, 쇠채 하나로 일군 ‘전승의 길’
이명훈 고문의 발자취는 곧 고창농악의 현대사다. 35년 전 고창 농악에 입문한 그는 한결같이 현장을 지켰다. 고창농악전수관을 운영하며 후학 양성에 매진했고, 사단법인 고창농악보존회의 기틀을 닦았다. 최근에는 고창농악 40주년 기념사업 추진위원장을 맡아 과거를 정리하고 미래를 설계하는 중책을 완수하기도 했다. 그의 상쇠질은 단순히 소리를 내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흩어져 있던 마을굿의 가락을 모으고, 고창농악만이 가진 투박하면서도 힘 있는 멋을 정립하는 과정이었다.
■‘현장’에서 ‘학문’으로…기록으로 세운 농악의 뼈대
이 고문이 다른 예인들과 차별화되는 지점은 바로 ‘기록’에 대한 집념이다. 그는 농악이 입에서 입으로만 전해지는 한계를 극복하고자 했다. 1998년부터 10년간 고창 전역을 누비며 마을굿의 원형을 채록했다. 그 결과물인 ‘고창 농악’, ‘고창의 마을굿’ 등 3권의 저서는 현재 고창농악 연구의 교과서로 불린다. 현장의 신명에 학술적 깊이를 더한 그의 노력 덕분에 고창 농악은 일회성 공연을 넘어, 누구나 배우고 연구할 수 있는 체계적인 ‘문화 자산’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 전국 대학생들의 성지, 1년 내내 끊이지 않는 굿판
그의 헌신은 숫자로 증명된다. 현재 고창농악전수관에는 매년 수천 명의 전수생이 몰려든다. 특히 전국 대학 풍물 동아리 사이에서 고창농악 전수는 ‘필수 코스’로 통한다. 공연 예매는 시작과 동시에 매진되기 일쑤며, 연간 60~80회의 공연이 쉼 없이 이어진다. 이러한 ‘고창농악 열풍’의 중심에는 전승 체계를 세우고 교육 프로그램을 보급한 이 고문의 노고가 녹아있다.
■“호남의 얼, 다음 세대로 잇는 가교 될 것”
심덕섭 고창군수는 “이번 보유자 인정은 고창농악이 호남의 얼을 대표하는 무형유산임을 재확인한 것”이라며, “이명훈 고문의 예술적 성취가 다음 세대로 온전히 이어질 수 있도록 행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축하의 뜻을 전했다.
보유자 인정을 알리는 12월 26일의 소식은 한 개인의 성취를 넘어 고창 농악의 새로운 장이 열렸음을 의미한다. 35년 상쇠의 길을 걸어온 예인의 땀방울은 이제 고창의 땅에 깊게 뿌리내려, 대대손손 이어질 신명 나는 가락으로 울려 퍼질 준비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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