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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의 차가운 공기를 가르고 육중한 기계들의 행렬이 고창읍 도심으로 밀려들었다. 1월7일 아침, 고창군 각 읍면에서 출발한 트랙터들이 고창읍 외곽 농산물유통센터로 모이기 시작했다. 60여대의 대형 트랙터와 수십여대의 트럭이 대열을 이뤘고, 이들이 내건 깃발에는 ‘일방적 나락값 결정 원천무효’, ‘일방적 나락값 결정 조합장 퇴진’이라는 날 선 문구들이 적혀 있었다.
트랙터 행렬이 고창읍 도심에 들어서자 4차선 도로는 순식간에 가득 찼다. 평온하던 읍내 공기는 시위대의 방송차와 엔진이 뿜어내는 열기로 순식간에 팽팽해졌다. 행진을 마친 트랙터들이 군청 앞 도로 양옆에 질서 있게 도열하자, 농민들은 곧바로 결의대회를 열었다(사진). 이들은 “농민을 배제한 가격 결정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우린 아직 결산하지 않았다”…7만원이라는 통보, 무너진 신뢰
농민들이 거리로 나선 이유는 분명했다. 고창 지역농협들이 농가와의 협의 없이 2025년산 나락값을 결정했기 때문이다. 농민들은 지난해 수확기부터 쌀생산자대책위원회(농촌지도자·한국후계농업경영인·농민회·여성농민회·한국쌀전업농·친환경농업인·전국쌀생산자, 이하 쌀대책위)를 중심으로 나락값 8만원 보장(40킬로그램)을 요구해 왔다. 그러나 농협들은 선급금(우선지급금) 6만원을 지급한 뒤, 최종 가격을 일반벼 7만원(신동진 7만3천원)으로 확정해 통보했다. 협상이 이뤄지지 않은채, 농협장들은 기습적으로 결정·통보했다는 것이 쌀대책위의 주장이다.
쌀 대책위는 최종 가격이 결정되기 전까지 각 지역농협 앞에 두 차례 나락을 적재하는 등 나락값 8만원을 제시하며 협상을 요구했다. 그러나 농협은 이에 응하지 않았고, 결국 가격은 일방적으로 확정됐다. 이 과정이 농민들의 분노에 불을 붙였다.
트랙터 행진을 이틀 앞둔 1월5일, 쌀대책위와 농협 조합장들 간의 만남이 어렵게 성사됐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도 입장 차는 좁혀지지 않았다. 조합장들은 일방적 가격 결정에 대해 사과하면서도 “이미 결산을 마쳤기 때문에 번복은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이에 농민들은 “우리는 아직 결산을 끝내지 않았다. 이제 시작일 뿐”이라며 협상장을 떠난 것으로 전해졌다.
결의대회에서 쌀 대책위는 요구 사항을 분명히 했다. 첫째, 일방적 나락값 결정은 원천무효이며 즉각 재협상에 나서야 한다는 점이다. 둘째, 2024년산 나락 가격 상승으로 발생한 판매 이익금을 농가에게 환원하겠다는 약속을 이행하라는 요구다. 셋째, 농협중앙회 손실보전금 지원 내역과 벼 수매·판매 관련 자료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책임 있게 설명하라는 것이다. 안성준 쌀대책위원장(한국후계농업경영인 고창군연합회장)은 “이 요구가 받아들여질 때까지 물러서지 않겠다”면서, “끝까지 싸워 반드시 끝을 보겠다”고 밝혔다.
“조합장 담합 용서 못 해”…군청 향한 ‘예산 중단’ 압박까지
발언에 나선 농민들은 격앙된 목소리로 현실을 토로했다. ‘나락값 후려친 놈 천벌 받는다’는 구호로 시작으로, “농민을 무시한 가격 결정은 생존권을 짓밟는 행위”라는 말이 이어졌고, 일부는 조합장 선거를 언급하며 책임을 묻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유창희 쌀전업농 고창군연합회장은 “농민들을 무시한 전북 조합장들의 담합 행위를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라며, 내년 조합장 선거에서의 ‘낙선 투쟁’까지 예고했다.
이덕진 고창군농민회장은 “농민들이 가격 결정에 참여하겠다는 것은 빼앗긴 생존의 권리를 찾겠다는 것”이라며, “고창군청은 농민들의 쌀 투쟁을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하지 말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이 회장은 고창군을 대상으로 △쌀 경쟁력 제고 사업·알피시(RPC·미곡종합처리장) 시설 개선 등 농협에 대한 모든 예산지원을 중단하고 농민에게 직접지원으로 전환 △농협중앙회에 예치된 9천억원에 달하는 고창군 금고를 타 금융기관으로 이관 △고창군농어민기본소득 시행 등을 요구했다.
타오르는 나락, 더 강력한 투쟁의 예고
이날 집회는 농민들이 나락에 직접 불을 지르는 상징의식으로 마무리됐다. 불타는 나락은 농민들의 타들어 가는 심정을 대변하는 듯했다. 이는 쌀값 결정 구조에 대한 항의이자, 쌀대책위는 더 강한 투쟁을 예고하며, “끝까지 싸워 반드시 결과를 만들어내겠다”고 밝혔다.
이번 사태의 핵심은 ‘협상의 부재’다. 농민들은 가격 자체보다 농협이 보여준 일방적인 행정 처리 방식에 더 큰 배신감을 느끼고 있다. 농민 조합원들이 직접 선출한 농협 조합장들이 정작 농민을 존중하지 않고 무시하고 있다는 인식이 현장에 깊게 퍼져 있다. 결국 다시 한 번 “농협은 과연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라는 근본적 질문이 제기되고 있다. 2025년산 나락값 최종 결정에 맞선 쌀대책위의 투쟁이 어떤 수위와 방식으로 이어질지, 나아가 2026년산 나락값 결정 과정에서 농민 참여와 협상이 제대로 보장될 수 있을지, 앞으로의 대응이 주목되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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