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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장산 능선을 타고 내려온 초록빛 바람이 용산호 수면 위를 스쳤다. 참가자들은 고택 마루에 앉아 쌍화차를 마시고, 동학농민혁명기념공원에서는 1894년의 시간을 따라 걸었다. 정읍시가 관광객 숫자 경쟁을 넘어 ‘이야기가 머무는 도시’로 방향을 틀고 있다. 관광 기반 시설을 넘어 지역의 자연·역사·생활문화를 콘텐츠로 엮어내며 체류형 관광도시 전환에 속도를 내는 모습이다.
정읍시는 지난 5월8일부터 10일까지 2박3일 일정으로 콘텐츠 분야 전문가 초청 팸투어를 진행했다. 이번 일정에는 노미경 여행작가와 이금림 드라마작가를 비롯해 드라마 제작자와 영화평론가 등 문화콘텐츠 관계자들이 참여했다. 단순 관광 홍보 목적의 방문이 아니라, 콘텐츠 생산자들이 지역의 공간과 서사를 직접 체험하며 문화콘텐츠 가능성을 점검하는 방식으로 기획됐다.
참가자들은 내장산국립공원과 신성공소, 용산호, 정읍국가유산 미디어아트관 ‘1894 달하루’, 김명관 고택, 무성서원, 동학농민혁명기념공원, 쌍화차거리 등을 둘러봤다. 일정은 관광지 나열보다 정읍의 자연과 역사, 음식과 생활문화를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관광객이 ‘보고 가는 도시’가 아니라 ‘머물며 경험하는 도시’로 정읍을 인식하게 만들겠다는 전략이 반영된 셈이다.
관광 인프라에서 ‘정읍다운 이야기’로
정읍시는 최근 몇 년 동안 관광 기반 시설 확충에 힘을 쏟아왔다. 하지만 최근 관광 정책 방향은 시설 중심에서 콘텐츠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다. 관광지 자체보다 그 안에 담긴 이야기와 감성, 체험 구조가 체류 시간을 좌우하는 흐름이 뚜렷해졌기 때문이다. 이번 팸투어 역시 이런 변화와 맞닿아 있다. 참가자들은 동학농민혁명기념제 기념식에도 참석해 정읍이 지닌 역사적 의미를 직접 체감했다. 단순히 유적지를 둘러보는 수준이 아니라, 동학농민혁명의 정신과 지역 정체성을 함께 경험하도록 구성된 일정이었다.
참가자들은 “정읍은 기대 이상으로 깊은 이야기와 풍부한 관광자원을 품은 도시”라고 평가했다. 내장산의 자연 풍경과 조선왕조실록을 지켜낸 역사, 동학농민혁명의 정신문화가 한 도시 안에서 연결된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는 반응이다. 정읍시는 이런 자원들을 각각 따로 소비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정읍만의 서사 구조’로 묶어내는 데 주력하고 있다. 자연과 역사, 음식과 생활문화가 유기적으로 이어질 때 체류형 관광 경쟁력이 생긴다는 판단이다.
“한옥에서 하룻밤”…체류형 관광 가능성 확인
이번 팸투어에서 특히 주목받은 공간은 김명관 고택과 인근 고택 체험관이었다. 참가자들은 한옥 숙박과 자연 밥상 체험을 함께 경험하며 정읍 관광의 차별성을 확인했다고 입을 모았다. 전통 한옥의 분위기와 지역 식재료를 활용한 음식, 조용한 농촌 풍경이 결합되며 ‘천천히 머무는 여행’의 감각을 만들어냈다는 평가다. 짧게 소비하고 떠나는 관광보다 지역의 시간을 경험하는 방식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노미경 작가는 “정읍은 자연과 역사, 음식과 사람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도시”라며 “천천히 머물며 여행하고 싶은 도시라는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금림 작가도 “정읍은 사람과 공간의 이야기가 살아 있는 도시”라며 “드라마와 영화 등 다양한 문화콘텐츠와 연결될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평가했다.
실제 최근 관광 시장에서는 체류형·감성형 관광 수요가 빠르게 커지고 있다. 유명 관광지를 짧게 소비하는 방식보다 지역의 분위기와 이야기를 깊게 경험하려는 여행 형태가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정읍시는 이런 흐름 속에서 지역 고유 자원의 경쟁력을 키울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글로벌 캠프·인플루언서 팸투어…콘텐츠 관광 실험 이어져
정읍시는 올해 들어 관광 콘텐츠 다변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글로벌 청년 겨울캠프와 외국인 인플루언서 초청 팸투어, 관광 빅데이터 기반 자문 사업 등이 대표적이다. 기존 관광 정책이 관광지 개발과 시설 조성에 집중됐다면, 최근에는 관광객 경험 구조를 설계하는 방향으로 확장되는 분위기다. 지역의 공간과 문화, 사람 이야기를 어떻게 콘텐츠화할 것인지가 핵심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이번 전문가 초청 팸투어 역시 그런 흐름의 연장선에 있다. 드라마와 영화, 출판, 미디어 콘텐츠 분야 전문가들이 정읍의 공간을 직접 체험하면서 콘텐츠 확장 가능성을 확인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정읍시는 이번 답사를 계기로 지역 이야기가 문화콘텐츠로 연결되는 사례가 실제로 나오길 기대하고 있다. 관광을 지역 소비에 그치게 하지 않고 콘텐츠 산업과 연결해 도시 브랜드 경쟁력까지 높이겠다는 구상이다.
정읍의 변화는 아직 진행형이다. 다만 분명한 것은 관광의 방향이 바뀌고 있다는 점이다. 관광객 숫자만 늘리는 도시가 아니라, 사람들이 오래 머물고 다시 찾고 싶은 도시. 정읍은 지금 그 가능성을 콘텐츠 안에서 실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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