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주간해피데이 | |
고창을 대표하는 여성시인 표순복 시인이 네 번째 시집 《처음을 밀어내고》를 발간하며 다시 한번 독자들 곁으로 돌아왔다. 표순복 시인은 지난 5월11일 도서출판 시와산문사에서 시집 《처음을 밀어내고》를 출간했다. 이번 시집은 전북특별자치도문화관광재단의 ‘2026 지역문화예술육성지원사업’ 지원을 받아 발간됐으며, 《특별하지 않은 날의 주절거림》, 《나무 곁으로 가다》, 《세 그루 빈손》에 이은 네 번째 시집이다.
고창에 살고 있는 표 시인은 1995년 월간 『한국시』를 통해 등단했다. 고창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한국문인협회, 전북문인협회, 고창문인협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또한 미당문학 부회장, 시맥회 부회장, 석정문학 이사, 작가와문장문학회 회장을 맡고 있으며 광화문시 동인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표 시인은 서울시인상, 고창문학상, 고창예술인상, 청암문학상, 전북문학상, 한국문학인상 등을 수상하며 지역과 중앙 문단을 오가며 꾸준한 작품 활동을 이어왔다. 특히 1980년대 중반부터 모양문학회 회원으로 활동하며 시를 써왔으며, 현재 고창에 거주하는 최고의 원로 여성시인으로 평가받는다. 오랜 세월 고창 문학의 한 축을 지켜오며 지역 시문학 발전에도 큰 역할을 해왔다.
이번 시집은 모두 5부 67편의 시를 담고 있다. 제1부 ‘봄은’ 14편, 제2부 ‘초록이 아니라’ 13편, 제3부 ‘가을 아침’ 13편, 제4부 ‘처음을 밀어내고’ 12편, 제5부 ‘야간근무’ 15편으로 구성됐다.
시집 제목이기도 한 표제시 「처음을 밀어내고」는 이번 시집의 핵심 정서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처음을 밀어낸다// 처음을 꺼내는 동안 불이 꺼진다/ 첫날은 까내보지 말자고/ 다른 계단으로 발을 옮긴다// 묵은 서류뭉치를 꺼내 태운다/ 서랍 속 펼쳐보지 않은 처음이 탄다// 처음을 버리고/ 기름때 같은 찌꺼기 걷어/ 무처럼 끊어낸 단면이 번듯하다// 버려야 할 것과 품어야 할 처음을 나누며/ 아무렇지 않은 듯/ 처음을 밀어낸다.”
시인은 이번 시집의 ‘시인의 말’에서도 이전과는 다른 시적 시도를 향한 고민을 드러냈다. “다시 詩作(시작)하고 싶었다/ 조금 다르게// 처음을 밀어내고// 조금은 낯설게 하고/ 조금은 재미가 있게/ 한 번쯤 벗어나고 싶었으나/ 전혀 새롭지 못한 그 자리에/ 다시 머물러 있다// 작은 내 노력이/ 독자 여러분께/ 조금의 즐거움을 드릴 수 있다면…/ 하고 바랄 뿐이다.” 이 문장들은 새로운 시작을 향한 욕망과 익숙한 자리로 되돌아오는 시인의 성찰을 동시에 보여준다. ‘처음을 밀어낸다’는 행위는 과거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오래된 것들을 다시 바라보고 삶을 새롭게 정돈하려는 시적 태도로 읽힌다.
시집 해설을 맡은 황정산 문학평론가는 ‘비워내며 살아남는 오래된 것들의 노래’라는 제목의 해설에서 표순복 시 세계의 특징을 오래됨에서 길어 올린 사유에 있다고 설명한다. 황 평론가는 “표순복 시인의 시집 《처음을 밀어내고》는 그 오래된 시간을 진솔하게 받아 적은 시집이다. 화자는 늘 오래된 자리로 가서 오래된 것을 말하고, 버티고, 비워내고 다시 피어난다. 그래서 이 시집의 핵심은 오래됨의 그 자체가 아니라, 오래됨에서 끌어낸 사유에 있다. 버티는 힘, 돌보는 윤리, 비우는 지혜가 사유의 깊이를 만들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처음을 밀어내는 행위는 시작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시작하기 위한 준비”라며 “펼쳐보지 못한 처음을 태우고, 비워야 할 상자를 비우고, 꽃이 진 자리에 남은 잎의 쓴맛을 받아들이고, 막힌 곳을 덜어내 흐름을 열어두는 것, 그런 반복 속에서 삶은 새로워진다”고 해설했다.
표순복 시인의 네 번째 시집 《처음을 밀어내고》는 새로움을 향한 조급한 선언보다 오래된 시간과 기억을 천천히 비워내며 다시 삶을 바라보는 과정에 주목한다. 오랫동안 고창 문학의 현장을 지켜온 시인이 내놓은 이번 시집은 세월이 남긴 흔적과 성찰, 그리고 다시 시작하려는 조용한 의지를 담아 독자들에게 깊은 여운을 전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