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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 토론회 중에 한 주민은 말했다. “주민투표도 한 적이 없는데, 주민들은 동의한 적도 없는데, 어떻게 방폐장이 들어올 수 있나?” 주민 측 윤종호 운영위원은 “위험 시설이 들어서는데 주민들에게 선택권이 없으며 무조건 건설을 강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과거 부안군을 비롯해 전라도 쪽으로 ‘방폐장’이 들어오려고 했을 때 다수의 주민들은 극심한 항거로 막아냈다. 이후 주민투표를 통해 경주에 ‘중저준위 방폐장’이 먼저 들어섰다. 임시라고는 하지만 중저준위 폐기물보다 훨씬 더 위험한 고준위 폐기물인 사용후핵연료에 대해 왜 극심한 반대가 없을까? 사용후핵연료는 이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물질 아닌가?
우라늄 핵연료를 핵분열 시킨 후 어떻게 관리해야 할까
사용후핵연료 관리는 작년 9월 시행한 ‘고준위방사성폐기물법’에 따른다. 핵분열 시킨 후(사용후) 핵연료는 우선 핵발전소 부지 내 수조(습식저장시설)에 임시 저장된다. 만약 ‘고준위방폐장’이 있었다면 수조에서 방폐장으로 옮기면 된다. 방폐장은 ‘처분시설’을 말하고, ‘처분’은 영구히 격리시키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고준위방폐장’을 마련하지 못했다.
그래서 ‘고준위폐기물법’에 따르면, 사용후핵연료는 ‘원자력발전소 부지 내 습식저장시설’(수조)→‘원자력발전소 부지 내 저장시설’(임시·건식)→‘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중간저장시설’→‘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고준위방폐장) 순서로 관리하게 된다. 이를 주민의 언어로 말하자면, 수조→임시방폐장→중간방폐장→영구방폐장 순서라고 부를 수 있다. 사용후핵연료 자체는 시간이 지날수록 위험도가 줄어든다. 따라서 임시방폐장이 영구방폐장보다 더 위험할 수 있다. 그런데도 주민 결정권·동의권은 없다. 주민들도 도리어 영구방폐장이라면 격렬히 반대하겠지만, 임시방폐장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경계가 낮다.
임시방폐장은 어떻게 건설되는가
지난 9월4일 고창읍 르네상스웨딩홀에서 ‘임시방폐장 건설계획’(=한빛원자력본부 부지 내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 시설계획)에 대한 토론회가 열렸다. ‘임시방폐장’을 건설하려면 ‘한국수력원자력’(한빛원자력본부)이 시설계획을 수립하고, 국무총리 소속 ‘고준위방사성폐기물관리위원회’가 이를 승인하면 된다. 즉 한수원이 계획을 수립하고 정부가 승인하는 구조다.
그 과정에 주민 의견수렴이 필요하다. 이에 따라 영광·고창 등지에서 건설계획에 대한 주민공람이 진행됐으며, 8월말~9월초 설명회·토론회가 진행됐고, 10월말 공청회가 진행될 예정이다. 이러한 주민 의견수렴이 주민 결정권을 대체할 수 있을까? 찬성하든 반대하든, 주민이 결정하거나 적어도 주민이 동의해야 하지 않을까? 토론회에서 윤종호 위원은 “우리의 선택권과 상관없이 그냥 무조건 짓는다예요. 우리는 그런 존재인가요? 최소한 지역 주민들의 의사를 묻는 과정은 있어야 되는 거 아닙니까?”라고 말했다.
9월4일 고창 토론회에는 주민 2백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송종순 교수(조선대 원자력공학과)를 좌장으로, 지역(주민)에서 추천한 이정윤 대표(원자력안전과미래)와 윤종호 운영위원(고창군한빛원전범군민대책위), 한수원이 추천한 박홍준 교수(동국대 원자력·에너지·전기공학과)·정범진 교수(경희대 원자력공학과)·조동건 박사(한국원자력연구원) 등이 참석했다. 지역 추천 인사 3명 중 1명은 참가를 고사했다. 윤종호 운영위원은 토론회에 앞서 좌장을 한수원 추천으로 한 것에 이의를 제기했다. 이들은 임시방폐장의 안전성과 주민수용성 등을 토론했다.
주민투표나 공론화(숙의형)는 왜 필요한가: “위험을 부담하는 사람에게 결정권이 있어야 한다”
다수 국민이 누리는 혜택을 위해, 사용후핵연료 시설처럼 특정 지역 주민에게 특별하고 집중된 위험을 부담시키려면, 국가의 일방적 결정과 단순히 “주민 의견을 들어야 한다”는 절차만으로는 정당성이 충분하지 않으며, 그 위험을 직접 부담하는 주민의 실질적인 자기결정권과 동의가 필요하다.
첫째, 다수에 의한 소수의 희생의 경우 소수의 동의가 민주적 정당성의 중요한 조건이다. 사용후핵연료 시설의 경우 이익은 전국적으로 분산되고, 위험은 특정 지역에 집중된다. 이 경우 위험을 부담하지 않는 사람들(다수 국민과 이를 대표하는 정부)이 위험을 부담하는 사람들의 운명을 결정하는 구조가 만들어진다. 이는 ‘다수에 의한 소수의 희생’이 될 위험이 있다. 따라서 직접적인 위험 부담자(소수)의 동의가 민주적 정당성의 중요한 조건이 된다.
둘째, 자기결정권의 문제다. 사용후핵연료 시설은 단순한 공적 시설이 아니다. 주민들의 생활환경, 건강과 안전에 대한 불안, 토지와 재산 가치, 지역의 미래 발전 방향, 다음 세대의 삶에 장기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따라서 이는 단순히 “국가가 어디에 시설을 설치할 것인가”의 행정 문제가 아니라, “누가 자신의 삶의 공간과 미래에 중대한 위험을 받아들일 것인가”라는 자기결정권의 문제다. 즉, 자신의 삶과 생활공간에 장기적·중대한 위험을 부담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당사자에게 결정권이 있어야 한다.
셋째, 환경정의의 원칙이다. 누가 혜택을 받았는가? 핵발전의 혜택은 전국이 누렸다. 누가 위험을 부담하는가? 핵폐기물 시설이 들어서는 특정 지역 주민이 집중적으로 부담한다. 따라서 ‘전 국민이 만들어낸 핵폐기물을 왜 특정 지역 주민이 대신 떠안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가능하다. 국가가 이에 대해 “국가 전체를 위해 필요하니 그 지역이 부담하라”고만 말한다면, 이는 부담의 공정한 분배라는 원칙에 문제가 생긴다. 따라서 환경정의의 관점에서는, 환경적 위험을 특정 지역에 집중시키는 결정에는 그 지역 주민의 실질적인 참여와 동의가 필요하다.
넷째, 국가권력의 정당성 문제다. 국가는 공익을 위해 국민에게 일정한 부담을 요구할 수 있다. 하지만 국가권력의 정당성은 단순히 “법률을 만들었으니 가능하다”에서 끝나지 않는다. 특히 특정 주민에게 중대한 위험을 강제하는 경우에는 다음의 질문이 필요하다. “국가는 어떤 정당성으로 특정 지역 주민에게 다른 국민이 부담하지 않는 위험을 떠넘길 수 있는가?” 여기에 대한 가장 강력한 답 중 하나가 바로 주민의 결정과 동의다. 즉, 주민의 동의는 국가의 권력을 제한하는 장치인 동시에 국가 결정에 민주적 정당성을 부여하는 장치다.
한수원에 대항하는 주민들의 입장은 무엇인가
고창군 산하 한빛원전범국민대책위, 고창·영광 주민·환경단체 측 주장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①“임시라는 보장이 없다.” ②“반출계획을 먼저 제시하라.” ③“4810다발의 근거가 무엇인가.” ④ “건식저장시설이 수명연장을 위한 사전 조치가 돼서는 안 된다.” ⑤“주민 의견수렴은 형식이 아니라 실질이어야 한다.” ⑥“주민투표·지역 공론화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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