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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전북에는 정치가 없다. 오직 선거만 있을 뿐이다.
수십 년간 이어진 더불어민주당의 일당 독점 체제 속에서, 전북은 정당이 대변해야 할 가치와 비전의 경쟁이 멈춘 지 오래되었다. 전북 선거는 정책적 대안을 두고 펼쳐지는 생산적인 경쟁이 아니다. 오직 민주당 당내 경선이라는 링 위에서 살아남느냐 죽느냐를 가르는 단선적인 승패, 그 자체만 중요할 뿐이다.
이 비극적인 현실은 단순히 특정 정치인의 자질 부족이나 정당의 무능 때문이 아니다. 그보다 훨씬 더 깊고 견고한 구조적 덫이다.
정치철학자 아이리스 메리언 영의 ‘구조적 부정의’. 영에 따르면, 부정의는 사회 구성원 각자가 자신의 위치에서 지극히 ‘정상적이고 합리적인’ 행동을 거듭할 때, 그 일상적 실천들이 얽히고설켜 도리어 공동체 전체를 억압하는 거대한 결과물로 정의한다.
전북 정치의 현실이 정확히 그렇다. 전북 도민 누구도 악의를 가지고 있지 않다. 민주당에 대한 절대적 지지는 자연스러운 행동이다. 당선 가능성을 우선하는 정치인들이 민주당 간판을 고집하는 것 역시 합리적인 선택이다. 그런데 결과는 민주주의 기능의 약화로 이어진다.
2026 전북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은 전북 14개 시·군 기초단체장을 모두 석권했다. 1995년 지방선거가 시작된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도지사, 시장·군수, 광역의회까지 민주당 일색이다. 개별 주체들의 정상적인 행위가 연쇄적으로 결합하여, 역설적이게도 전북 전체의 정치적 역량을 저하시키는 ‘구조적 부정의’의 덫을 완성한 것이다.
2. 이 덫이 가져온 최종 결과물이 바로 ‘정치 소멸’의 징후이다.
정치 소멸이란, 공동체가 직면한 진짜 위기(인구 감소, 지방 소멸, 산업 구조의 붕괴)를 해결하기 위해 정치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마비된 상태를 뜻한다. 공동체의 미래 비전을 두고 치열하게 논쟁해야 할 정치가, 그저 ‘공천권을 쥔 중앙당’을 향한 줄서기와 권력 투쟁으로 변질될 때 정치는 소멸한다.
이번 2026년 전라북도 도지사 선거는 겉보기엔 그 어느 때보다 파란만장했다. 경선 과정에서 제명, 윤리감찰, 단식투쟁이 등장했다. 본선에서도 민주당 후보가 거리에서 한 표를 절박하게 호소하는 처음 보는 풍경이 펼쳐졌다.
그러나 드라마틱하게 보였던 그 모든 소동은 사실 정치가 사라진 진공 상태에서 벌어진, 권력 투쟁이었다. 지역을 살릴 ‘정치’는 배제되었다.
이번 전북도지사 선거는 전북의 선거가 아니었다. 차기 민주당 전당대회를 앞두고 정청래 대표가 전북이라는 전략 자산을 확보하려는 기획으로 시작되었다. 중앙당이 도지사 선거의 판을 짜고, 막후에서 철저히 킹메이커 역할을 자임했다. 통상적인 경선 규칙이 무너지고 상식을 벗어난 파행이 난무했던 이유는, 중앙당 권력이 특정 정파를 심고 반대 정파를 쳐내기 위해 로컬의 자율성을 짓밟으며 무리하게 개입했기 때문이다.
3. 이 지점에서 우리는 영이 말한 ‘구조적 부정의’가 어떻게 전북 정치를 ‘중앙당 종속 정치’로 전락시키는지를 목격한다.
민주당 간판만 달면 무조건 당선되는 일당 독점의 구조적 덫이 쳐져 있다 보니, 중앙당은 전북을 독자적인 생존과 비전을 가진 지역으로 보지 않는다. 그들에게 전북은 그저 자신들의 권력 투쟁을 위해 언제든 징발할 수 있는 ‘정치적 영지’이자 ‘표밭’으로 여긴다.
전북의 정치인들 또한 도민이 아닌 중앙당 권력자의 입만 바라보는 해바라기 정치를 자처한다. 지역민의 삶을 돌보는 것보다 공천권자의 눈에 들어 공천장을 따내는 것이 생존을 위한 합리적인 선택이기 때문이다.
결국 중앙당의 기획과 전북 정치인들의 자발적 예속이 결합하여, ‘정치 소멸’은 이번 선거를 통해 전북에서 가장 완성된 형태로 등장하였다.
중앙 정치에 저당 잡혀 정치가 소멸해 버린 지역은 스스로 위기를 돌파할 정치적 근육을 상실한다. 정치가 소멸하면, 전북이라는 공동체의 소멸을 막아낼 방어벽도 함께 무너진다.
역대 최초로 14개 시·군 기초단체장을 민주당이 싹쓸이했다는 화려한 승리의 기록은, 역설적이게도 전북 정치가 소멸의 위기로 접어들었음을 알리는 위험한 진단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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