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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최 부잣집의 가정교육
지금은 자기주도학습의 시대 (46)
박종은(전 기자 / 입력 : 2012년 05월 21일(월) 10:24
공유 : 트위터페이스북미투데이요즘에

가정교육이 중요하다.
우리 아이들이 교육을 받는 길은 크게 학교교육, 가정교육, 사회교육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그 중에서 아이의 인생을 가장 크게 좌우하는 것은 가정교육이라고 생각한다.

경주 최 부잣집에는 훌륭한 가정교육이 있었다.
사람은 누구나 부자가 되고 싶어 한다. 그래선지 “부자 되세요”라는 인사를 받으면 즐거워진다. 부자가 되는 것을 싫어할 사람은 없다. 그런데 부자란 되는 것도 어렵지만, 그 부를 오랫동안 지켜내기는 더더욱 어렵다. 그래서 부자 3대 못 간다는 말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 간 부자요, 가장 존경받는 부자는 경주 최 부잣집이다. 12대에 걸쳐 300년 간 만석꾼을 지냈다. 그 경이로운 배경에는 훌륭한 가정교육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육연(六然)으로 자신을 다스리라 가르쳤다.
‘육연’은 최 부잣집 가정교육의 원리이며 인품을 닦아온 수신철학이기도 하다. 그 내용은 이렇다.
첫째로, 자처초연(自處超然)이라, 스스로 초연하게 지낸다. 둘째로, 대인애연(對人靄然)이라, 남에게 온화하게 대한다. 셋째로, 무사징연(無事澄然)이라, 일이 없을 때는 맑게 지낸다. 넷째로, 유사감연(有事敢然)이라, 일이 있을 때는 과단성 있게 대처한다. 다섯째, 득의담연(得意淡然)이라, 뜻을 얻었을 때는 담담하게 처신하라. 여섯째, 실의태연(失意泰然)이라, 실의에 빠졌을 때는 태연하게 행동하라.
이것이 ‘육연’이다. 역사평론가인 조용헌이 쓴 기록에 의하면, 최 부잣집 후손들은 유년시절부터 매일 아침마다 일어나면 곧바로 조부님이 계시는 사랑채에 가서 붓글씨로 이 ‘육연’을 썼다고 한다. 물론 할아버지 앞에서 써야만 했다.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반복하여 수 년 동안 이 글(육연)을 쓰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 내용이 몸속에 박히게 되었다.
17세기 중반에 시작하여 해방 후까지 조선 최고의 부자이며 최상류층이었던 가정교육은 그렇게 이루어졌다. 부를 유지한다는 것은 수준 높은 인격과 수양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는 것을 증명하는 실화이며, 그렇게 인격을 닦아왔기에 그런 부자였음에도 영남에서 줄곧 존경받는 집안으로 추앙받아온 것이다.

육훈(六訓)으로 집안을 다스리라고 가르쳤다.
한 마디로 300년 이상 이어온 최 부잣집의 가훈이다.
첫째로, 과거를 보되 진사 이상은 하지 마라. 둘째로, 재산을 만석 이상 지니지 마라. 셋째로,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라. 넷째로, 흉년에는 땅을 사지 마라. 다섯째, 며느리들은 시집 온 후 3년 동안 무명옷을 입어라. 여섯째, 사방 백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진사는 조선시대에 초시에 합격한 사람을 가리킨다. 진사는 벼슬이 아니다. 명예나 권력을 쫓아다니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고, 양반 신분을 유지하며 지식을 쌓는 공부에 게을리 하지 말아, 슬기로움과 절제로 덕을 쌓으라는 가르침이다. 실제로 9대에서 진사를 했다.
최 부잣집의 후손들은 부에 대한 욕망을 절제하여, 300년간 만석을 유지하였다. 그 당시에 소작료는 수확량의 70~80%였는데 40% 이하로 낮추어 받았다. 그러니 소작인들은 최 부잣집의 토지가 늘어나기를 바랐고, 그 집의 소작을 지으려고 줄을 섰다.
최 부잣집을 찾아오는 과객이 100명이 넘는 날이 많았다. 과객마다 개별로 독상을 차려 대접하였고, 며칠을 묵어도 눈치 하지 않았으며, 떠날 때는 과메기와 쌀을 손에 들려 보냈다. 최 부잣집의 연간 수입은 쌀로 삼천석인데 그 중에서 천석은 과객접대로, 또 천석은 빈민구제로 사용하고 나머지 천석은 집안에서 운용하였다.
그때에는 흉년이 들면 도처에 굶어죽는 사람들이 허다했다. 어쩔 수 없이 아사 직전에 흰죽 한 끼 얻어먹고 내어주는 흰죽논이 있는가 하면, 쌀 한 말에 논 한 마지기를 팔아넘기는 일이 비일비재해서, 부자들이 토지를 헐값으로 사들이는 절호의 기회로 삼았는데, 최 부잣집은 흉년에 땅을 사려면 다른 때보다 더 주고 사거나 아예 땅을 사지 않았다.
창고 열쇠의 여주인들에게 절약정신을 심어주기 위하여 춘궁기에는 집안 식구들이 쌀밥을 먹지 못하도록 하였고 은수저도 사용하지 못하게 하였다.
주변에서 굶어죽는 사람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 매년 천석 이상을 빈민을 구제하는 데 활용하였다.

부는 쌓은 덕과 가정교육으로 유지했다.
흉년이 들면 최 부잣집은 곳간을 활짝 열어 굶주린 사람들에게 죽을 쑤어 먹이고 곡식을 나누어 주었으며, 헐벗은 사람에게는 옷을 지어주었다. 최 부잣집은 담보로 잡아놓은 땅이나 집문서를 모두 주인에게 돌려주었다. 마땅히 돈을 갚을 사람이라면 담보가 없더라도 갚을 것이요, 못 갚을 사람이라면 담보가 있다 해도 못 갚을 것이니, 빚진 사람들의 고통을 줄여주고자 했다. 이렇게 덕을 쌓으니 활빈당 도적떼들도 그 집만은 건들지 않았다 한다. 거기다가 가정교육을 철저히 하여 ‘육연’과 ‘육훈’을 대대로 지켜 왔기에 오래오래 부를 누릴 수 있었다.

시작도 과정도 끝도 좋았다.
최 부잣집 제1대 시조 최진립은 임진왜란 때는 의병을 일으켜 왜적을 무찔렀고, 전라도수군절도사를 역임하였으며, 병자호란에 참전한 공로로 공신토지를 받았는데, 그 후손들이 그것을 기반으로 만석을 일으켰다. 그로부터 300년간 만석꾼 최 부자 가문을 유지해 왔는데, 마지막 부자인 최준이 선조들의 가르침에 따라 주권이 빼앗긴 식민지 나라에서 자신만 부자로 산다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고, 우리나라의 광복을 위해 백산상회를 통하여 독립운동자금을 지원하였을 뿐만 아니라, 조국을 빼앗긴 원인은 교육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만석지기 토지와 살고 있던 집까지 전 재산을 학교재단에 희사했다. 지금의 영남대학이다.
“해방이 되었으니 일경의 감시도 없고, 전 재산을 희사했으니 도둑이 들 일도 없어서 이제 대문을 활짝 열어놓고 살겠다”라는 말을 남기며, 1970년 10월 스스로 최 부잣집은 막을 내리고, 지금 그 후손들은 평범한 중산층으로 살아가고 있다. 정말 최 부잣집은 시작도 과정도 끝도 좋았다. 그것은 그렇게 훌륭한 가정교육이 전통적으로 이어왔기 때문이다.
박종은(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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